심야 버스의 0번 좌석
밤 11시 45분, 경기도 외곽으로 향하는 마지막 광역버스를 탔다.
버스는 낡았고 내부의 형광등은 주황빛으로 흐릿했다.
승객은 나를 포함해 세 명뿐이었다.
가장 뒤쪽에서 세 번째, 창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번 정류장은… 정류장은…"
기계음이 지직거리며 끊겼다.
운전석 위의 전광판에는 '0번 좌석의 승객은 하차해 주십시오'라는 문자가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좌석 번호를 확인했다.
내 자리는 14번이었다.
맨 뒷줄의 다른 승객 두 명은 고개를 숙인 채 자고 있었다.
버스가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국도로 진입했다.
갑자기 급브레이크가 걸리며 몸이 앞으로 쏠렸다.
정류장도 없는 도로 한복판이었다.
앞문이 스르륵 열렸다.
아무도 타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 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하나씩 찍히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발자국은 통로를 따라 똑바로 걸어왔다.
물이 흥건한 발자국은 내 바로 옆자리인 13번 좌석 앞에서 멈췄다.
의자가 삐걱거리며 아래로 푹 내려앉았다.
누군가 앉은 것처럼 천 시트가 움푹 파였다.
비린내가 진하게 풍겼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내 옆자리 창문 유리에, 온몸이 물에 젖어 살이 하얗게 분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현실의 좌석이 아니라 창문 유리 안쪽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가 손가락으로 유리를 두드렸다.
"똑, 똑."
전광판의 글씨가 바뀌었다.
'0번 좌석은 거울 속입니다.'
창문 속 남자가 오른손을 뻗어 유리 표면을 밀었다.
평평하던 유리가 고무처럼 늘어나며 내 쪽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남자의 손가락이 유리를 뚫고 현실의 공기 중으로 툭 삐져나왔다.
앞을 보았다.
운전석의 기사는 미동도 없이 정면만 보고 있었다.
룸미러로 기사의 눈과 마주쳤다.
기사의 눈동자는 하얗게 뒤집혀 있었다.
다시 창문을 보았을 때, 늘어난 유리 너머로 남자의 상반신 전체가 내 어깨 바로 옆까지 쏟아져 나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