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보관함의 안내장
지하철역 구석에 있는 무인 보관함을 찾았다.
주변 상가들이 문을 닫아 복도는 어두웠다.
24번 보관함 앞에 섰다.
당근마켓으로 거래한 중고 부품이 들어있어야 했다.
판매자가 알려준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눌렀다.
"탁."
잠금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문을 열었다.
안은 비어 있었다.
바닥에 누런색 종이 한 장만 놓여 있었다.
종이를 집어 들었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물건은 아래 칸에 있습니다.'
고개를 숙여 바로 아래에 있는 32번 보관함을 보았다.
32번 보관함의 문이 1센티미터쯤 열려 있었다.
손가락을 틈새에 넣고 문을 당겼다.
그 안에도 물건은 없었다.
똑같은 누런색 종이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물건은 옆 칸에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31번 보관함을 보았다.
역시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31번 문을 열었다.
바닥에 종이가 있었다.
'물건은 뒤에 있습니다.'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철역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보관함 쪽으로 몸을 돌렸다.
31번 보관함 내부 깊숙한 곳에 검은색 구멍이 뚫려 있었다.
보관함 뒷벽이 통째로 뜯겨 나간 상태였다.
구멍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손전등을 켜고 보관함 안쪽 구멍을 비추었다.

좁고 어두운 콘크리트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 누런색 종이들이 수백 장 넘게 사방으로 붙어 있었다.
가장 안쪽 벽에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네 발로 벽을 짚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온몸에 누런색 종이를 깁듯이 다닥다닥 붙이고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눈과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물건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가 벽을 차고 보관함 구멍을 향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종이들이 쓸리는 소리가 좁은 보관함 안에서 찌르르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