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사바, 펜 하나를 같이 잡고 귀신을 부르던 교실
교실 불을 다 끄지는 않았다.
형광등 한 줄만 남겨뒀다.
창문 밖은 이미 어두웠고, 복도에서는 가끔 다른 반 애들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책상 위에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동그라미.
주변에는 숫자와 글자.
한쪽에는 예.
다른 한쪽에는 아니오.
그리고 펜 하나.
두 사람이 그 펜을 같이 잡았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누가 먼저 웃으면 분위기가 깨졌다.
그래도 다시 했다.
목소리를 더 낮췄다.
“오이데 구다사이.”
혼이여, 오세요.

그 말이 끝나고 나면 교실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진짜로 귀신이 왔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펜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때부터는 장난이 아니었다.
누가 밀었어?
너 손에 힘 줬지?
아니야, 나 진짜 안 움직였어.
웃던 애들도 그 순간에는 입을 다물었다.
씨네21은 2004년 영화 《분신사바》를 소개하면서, 분신사바를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으로 설명했다. 두 사람이 연필을 함께 쥐고 종이 위에 올려놓으면, 주문에 맞춰 연필이 움직이고 귀신의 이야기를 전한다고 알려졌다는 내용이었다. 또 이 주문은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학교들을 중심으로 오래 비밀스럽게 인기를 끌었다고 정리했다.
한국 학교에서 분신사바가 무서웠던 이유는 단순했다.
준비물이 너무 쉬웠다.
폐가에 갈 필요도 없었다.
밤 산길을 걸을 필요도 없었다.
친구 두 명, 종이 한 장, 펜 하나면 됐다.
그게 문제였다.
쉬는 시간에도 할 수 있었다.
야자 시간에도 할 수 있었다.
수련회 방 안에서도 할 수 있었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도 할 수 있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었다.
분신사바에는 항상 비슷한 금기가 따라왔다.
중간에 손을 떼면 안 된다.
혼자 하면 안 된다.
장난으로 부르면 안 된다.
왔는지 확인하려고 이상한 질문을 하면 안 된다.
마지막에 제대로 돌려보내야 한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런 걸 제대로 지킬 리가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일부러 펜을 움직였다.
누군가는 안 움직였다고 우겼다.
누군가는 갑자기 손을 뗐다.
누군가는 겁먹은 친구를 놀리려고 죽은 사람 이름을 말했다.
그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다 같이 웃었다.
그다음에는 한 명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근데 아까 진짜 움직이지 않았어?”
이 말이 나오면 끝이었다.
분신사바는 귀신보다 그다음 시간이 더 무서웠다.
집에 가는 길.
불 끄고 누웠을 때.
다음 날 학교에 갔는데 같이 했던 친구가 결석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분신사바 괴담은 영화로도 크게 알려졌다.
2004년 개봉한 안병기 감독의 영화 《분신사바》는 따돌림을 당하던 여학생이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을 저주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고, 이후 의문의 죽음이 이어지는 이야기다. 경향신문은 이 영화를 “왕따와 원혼을 소재로 한 공포물”이라고 소개했다.
원작으로 연결되는 이종호의 소설 《분신사바》도 비슷한 지점을 건드린다.
YES24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작품은 학교라는 닫힌 공간을 넘어 고립된 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미신과 왕따 문제를 다룬다. 시골 학교로 전학 온 유진이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분신사바 주문으로 아이들을 저주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분신사바는 그냥 귀신 놀이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말로 못 하는 원망.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끝까지 장난으로 끝나지 않는 분위기.
그런 것들이 펜 끝에 모였다.
물론 실제로 귀신이 펜을 움직였다는 증거는 없다.
대부분은 손에 들어간 힘, 친구의 장난, 기대감, 긴장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펜을 잡고 있으면, 누가 움직였는지 애매해진다.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그런 설명이 잘 먹히지 않았다.
아이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먼저 얼굴을 봤다.
너 움직였지?
아닌데.
그럼 누가 움직였는데?
대답이 없으면, 그 빈자리에 귀신이 들어왔다.
분신사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홍콩할매귀신은 밖에서 온다.
빨간 마스크는 길에서 만난다.
봉천동 귀신은 화면 안에서 다가온다.
그런데 분신사바는 다르다.
내가 불렀다.
내 손으로 펜을 잡았고,
내 입으로 주문을 말했고,
내가 궁금해서 질문했다.
그래서 더 찝찝했다.
무서운 일을 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괜히 시작한 사람이 나라는 느낌이 남았다.
교실에 남아 있던 형광등 한 줄.
종이 위에 적힌 예와 아니오.
친구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펜.
그리고 괜히 낮아진 목소리.
“분신사바, 분신사바.”
그 말은 별것 아닌 장난처럼 시작됐다.
하지만 펜이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아이들은 바로 알았다.
이건 이제 누가 움직였는지 끝까지 모를 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