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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괴담

얼음 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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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안에서 눈을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

물이 너무 차갑다.

그는 숨을 들이켰다.

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입안이 말라 있었다.
혀가 잇몸에 붙은 것 같았다.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처음 보는 천장이었다.

호텔방.

그제야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다.

출장.
공항.
렌터카.
컨벤션 센터.
저녁 미팅.
호텔 바.

그리고 여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몸이 물 안에 잠겨 있었다.

아니, 물이 아니었다.

얼음이었다.

욕조 안에는 얼음이 가득했다.
얼음 사이로 차가운 물이 차올라 있었다.
셔츠는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바지는 그대로 입고 있었다.

신발은 없었다.

“뭐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욕조 양쪽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옆구리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숨이 막혔다.

그는 다시 욕조 안으로 주저앉았다.

오른쪽 옆구리.

갈비뼈 아래쪽.

거기에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다.

처음엔 다친 줄 알았다.
넘어졌나.
차에 치였나.
술에 취해서 어디 부딪혔나.

하지만 붕대는 너무 반듯했다.

대충 감은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감은 것처럼 흰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그는 손으로 붕대를 만졌다.

손끝에 피가 묻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욕실 바닥에 호텔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선이 길게 늘어져 욕조 앞까지 끌려와 있었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둔 것 같았다.

전화기 옆에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글씨는 굵은 검은 펜으로 적혀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
살고 싶으면 911에 전화해라.

그는 한동안 종이를 보고만 있었다.

말이 안 됐다.

장난.

누가 이런 장난을 치나.

그는 욕조에서 나오려고 다시 팔에 힘을 줬다.

옆구리가 또 아팠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심했다.

몸 안쪽에서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 났다.
그런 느낌을 어떻게 아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그냥 알았다.

뭔가 잘못됐다.

그는 바닥에 놓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못했다.
두 번이나 잘못 눌렀다.

세 번째에야 911을 눌렀다.

“911, what’s your emergency?”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바로 말하지 못했다.

입이 얼어 있었다.
이가 부딪혔다.

“호텔… 욕조…”

“선생님, 천천히 말씀하세요.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는 호텔 이름을 말하려 했다.

기억이 흐렸다.

방 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욕실 문 쪽을 봤다.

문은 열려 있었다.

침대가 보였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바닥에는 그의 재킷이 떨어져 있었다.

재킷 주머니에 카드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옆구리가…”

그는 겨우 말했다.

“피가 나요.”

상담원 목소리가 바뀌었다.

“지금 몸에 붕대가 감겨 있습니까?”

그는 숨을 멈췄다.

“네.”

“욕조 안에 얼음이 있습니까?”

그는 수화기를 꽉 잡았다.

“네.”

상담원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선생님, 욕조에서 나오지 마세요.”

“무슨 일이에요?”

“구조대를 보내겠습니다. 지금 계신 호텔 이름을 확인해야 합니다.”

“모르겠어요.”

“방 안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까? 카드키, 영수증, 전화기 옆 안내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욕실 벽에는 수건걸이가 있었다.
하얀 수건 세 장.
그 밑에 작은 비누.
세면대 위에는 호텔 로고가 박힌 컵이 있었다.

그는 눈을 찡그렸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컵에… 이름이…”

그는 컵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몸이 조금 움직이자 옆구리에서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다.
욕조 안은 차가운데, 그 부위만 불에 닿은 것 같았다.

“손 닿아요. 잠깐…”

“천천히 하세요. 절대 일어서지 마세요.”

그는 컵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컵이 깨졌다.

깨진 조각에 로고가 보였다.

“브래드포드… 브래드포드 호텔…”

“도시는 어디입니까?”

그는 눈을 감았다.

도시.

출장 온 도시.

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야구 이야기를 했다.
컨벤션 센터 앞에 큰 간판이 있었다.

“뉴올리언스.”

그가 말했다.

“브래드포드 호텔. 뉴올리언스.”

“구조대가 출동합니다. 전화 끊지 마세요.”

그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욕조 안에 기대앉았다.

얼음이 등 뒤에서 녹고 있었다.
물이 점점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침대 쪽을 봤다.

어젯밤 여자가 앉아 있던 자리.

검은 원피스.
짧은 머리.
술을 마실 때마다 웃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출장이에요?”

그는 그렇다고 했다.

회사 이름도 말했다.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도 말했다.
혼자 왔다고도 말했다.

그건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바에서 세 번째 술을 마셨다.

그 뒤는 끊겨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던 것 같았다.
여자가 방 번호를 물었던 것 같았다.
카드키를 꺼내는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기억났다.

그리고 끝.

그 다음은 욕조였다.

상담원이 계속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의식 잃지 마세요. 이름 말씀해 주세요.”

그는 이름을 말했다.

“나이는요?”

마흔둘.

“복용 중인 약 있습니까?”

없다.

“알레르기 있습니까?”

없다.

대답할수록 잠이 왔다.

너무 피곤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선생님, 주무시면 안 됩니다.”

상담원 목소리가 멀어졌다.

“눈 뜨세요.”

그는 억지로 눈을 떴다.

욕실 거울이 보였다.

거울 속의 그는 낯선 사람 같았다.

입술은 파랬다.
머리는 젖어 있었다.
얼굴은 회색이었다.

그리고 거울 오른쪽 아래.

김이 서린 부분에 손가락으로 쓴 글씨가 있었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자 글자가 읽혔다.

감사합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감사.

누가.

무엇을.

그때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바로 숨을 멈췄다.

“누가 왔어요.”

상담원이 말했다.

“구조대입니까?”

“모르겠어요.”

발소리는 방 문 앞에서 멈췄다.

카드키 소리가 났다.

삑.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시.

삑.

이번에도 열리지 않았다.

그는 수화기를 입에 가까이 가져갔다.

“누가 문 열려고 해요.”

상담원 목소리가 낮아졌다.

“소리 내지 마세요.”

그는 입을 막았다.

문 밖의 사람은 잠깐 조용했다.

그리고 노크했다.

똑.

“하우스키핑.”

여자 목소리였다.

아침 청소.

그는 대답하려 했다.

상담원이 말했다.

“대답하지 마세요. 구조대가 곧 도착합니다.”

문 밖의 여자는 다시 말했다.

“하우스키핑.”

그 목소리는 너무 평범했다.

호텔 청소부처럼 들렸다.
손님이 방 안에 있으면 그냥 지나갈 목소리였다.

하지만 시간은 새벽이었다.

커튼 틈은 아직 어두웠다.

그는 시간을 봐야 했다.

시계가 없었다.

휴대폰도 없었다.

문 밖에서 작은 금속 소리가 났다.

마스터키.

상담원이 물었다.

“문이 열리고 있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문 손잡이가 천천히 내려갔다.

이번에는 문이 열렸다.

호텔방 문이 아주 조금 벌어졌다.

복도 불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욕실 문틈으로 현관 쪽을 봤다.

검은 구두가 보였다.

여자가 아니었다.

구두가 너무 컸다.

그 위로 회색 바지 끝단이 보였다.

남자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문 앞에 서 있었다.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욕조 안에서 수화기를 꽉 잡고 있었다.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방 안을 살피는 것 같았다.

침대.
바닥.
욕실 쪽.

그 순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게.

남자는 바로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방금 누가 들어왔어요.”

“지금 구조대가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그대로 계세요.”

몇 분 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났다.

이번에는 크게.

“소방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그는 대답했다.

“욕실이에요.”

사람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욕실 불이 켜졌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밝았다.

소방관 하나가 욕조 옆에 무릎을 꿇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았다.

그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구급대원이 붕대를 확인했다.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말을 아꼈다.

“병원으로 갑니다.”

“저… 뭐예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물었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구급대원은 산소마스크를 씌우며 말했다.

“병원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눈을 피할 때는 이유가 있다.

병원에서 그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 옆에는 경찰이 있었다.

의사도 있었다.

경찰은 먼저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젯밤 누구와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기억나는 만큼 말했다.

바.
여자.
술.
엘리베이터.
방.

경찰은 메모했다.

의사는 더 늦게 말했다.

“오른쪽 신장 하나가 제거됐습니다.”

그는 천장을 보았다.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뭐가요?”

“신장입니다.”

“제… 콩팥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개 부위가 있습니다. 전문적인 처치가 된 흔적이 있습니다.”

그는 웃었다.

웃음이 나와서 웃은 게 아니었다.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은 호텔 CCTV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전날 밤 11시 42분에 여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여자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새벽 2시 13분.

호텔 뒤쪽 직원 출입구로 의료용 가방을 든 남자 둘이 나갔다.

그들은 호텔 직원이 아니었다.

새벽 4시 50분.

누군가 그의 방 문을 다시 열려고 했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몇 분 전이었다.

경찰은 그 남자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여자도 찾지 못했다.

바 직원은 그녀를 모른다고 했다.
그날 처음 본 손님이라고 했다.
카드는 현금으로 계산했다.

호텔방에서는 휴대폰이 사라져 있었다.

지갑도 사라져 있었다.
노트북도 없어졌다.

하지만 손목시계는 그대로 있었다.

경찰은 그게 이상하다고 했다.

돈이 목적이면 시계도 가져갔을 거라고.

그는 의사에게 물었다.

“저 살 수 있습니까?”

의사는 말했다.

“네. 한쪽 신장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계속 관리해야 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 수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자기 몸 안에 빈자리가 생겼다는 생각만 했다.

평생 가지고 태어난 것이 하나 없어졌다.

허락도 없이.

말도 없이.

그는 며칠 뒤 퇴원했다.

호텔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짐은 경찰이 가져왔다.

젖은 셔츠.
바지.
재킷.
깨진 컵 조각.
그리고 욕실 바닥에 있던 종이.

움직이지 마라.
살고 싶으면 911에 전화해라.

경찰은 그 종이를 증거 봉투에 넣었다.

그는 그것을 한참 봤다.

누가 썼을까.

그를 죽이려던 사람이 쓴 걸까.
아니면 최소한 살려는 놔두려던 사람이 쓴 걸까.

그게 더 싫었다.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얼음에 넣어뒀다.
전화기를 가져다뒀다.
신고하라고 적어뒀다.

사람 목숨을 챙긴 게 아니라, 물건을 꺼낸 뒤 포장을 마친 것 같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에게 모든 걸 말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그러다 병원 서류를 봤다.
옆구리 흉터를 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동안 호텔에 묵지 못했다.

출장도 거절했다.
비행기도 타지 않았다.
바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술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얼음이 든 컵을 보면 속이 뒤집혔다.

몇 년이 지나도 습관은 그대로였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먼저 손을 본다.
가방을 본다.
출입구를 본다.

그리고 호텔방에 들어가면 욕실부터 확인한다.

욕조 안.

샤워 커튼 뒤.

바닥에 전화기가 놓여 있지 않은지.

그런 걸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는 본다.

욕조에 얼음이 없어도 본다.

하얀 타일과 배수구와 접힌 수건을 확인한다.

그리고 가끔 거울에 김이 서리면, 손바닥으로 바로 닦아낸다.

글씨가 있을까 봐.

감사합니다.

그 문장을 다시 볼까 봐.

이 이야기는 도시괴담 Kidney Theft / The Kidney Heist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대표적인 구조는 여행자나 출장자가 낯선 사람에게 약을 탄 술을 마신 뒤, 얼음이 가득한 욕조에서 깨어나고, 옆구리의 봉합 자국과 “살고 싶으면 911에 전화하라”는 쪽지를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Snopes는 이 이야기를 사실이 아닌 도시괴담으로 분류하며, 1997년 이메일 경고문을 통해 크게 퍼졌고, 이 계열의 이야기는 적어도 1991년 무렵부터 유통됐다고 정리한다. 또 1995~1996년 무렵부터 ‘얼음 욕조’와 ‘911에 전화하라’는 요소가 지금의 형태로 강하게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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