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을 기다리며 창문을 두드리는 검은 눈의 아이들

그날은 별일 없는 밤이었다.
텍사스 애빌린의 쇼핑몰 주차장이었다.
영화관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지만, 주차장 안쪽은 거의 비어 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수표를 쓰고 있었다.
요금을 내야 했고,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들른 것뿐이었다.
그때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톡.
톡.
고개를 들었더니 남자아이 둘이 서 있었다.
나이는 열두세 살쯤 돼 보였다.
옷도 평범했다. 후드티랑 청바지.
비에 젖은 것도 아니고, 다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겁이 났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문을 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운전석 쪽에 선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영화 보러 가야 하는데 돈을 두고 왔어요. 집까지 태워다 주실 수 있어요?”
말은 정중했다.
근데 말투가 이상했다.
아이답지 않게 또박또박했고, 미리 외운 문장을 읽는 것 같았다.
나는 문을 잠근 채 말했다.
“부모님한테 전화해.”
아이는 웃지도 않았다.
“전화는 안 돼요. 오래 안 걸려요. 저희를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그 말이 나왔을 때 손이 바로 문 잠금 버튼 쪽으로 갔다.
내가 누르려 한 게 아니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인 것 같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손을 뺐다.
아이 둘은 차창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이제 얼굴이 더 잘 보였다.
눈이 이상했다.
처음엔 어두워서 그런 줄 알았다.
주차장 조명이 약해서 눈동자가 안 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흰자위가 없었다.
눈 전체가 검었다.
눈동자와 흰자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냥 검은 유리구슬 두 개가 얼굴에 박혀 있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아이 목소리가 낮아졌다.
“문 열어 주세요.”
옆에 있던 작은 아이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들어가야 해요.”
그 말이 더 싫었다.
태워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도와달라는 말도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큰아이가 차창에 손을 댔다.
손바닥이 유리에 납작하게 붙었다.
아이 손인데 손가락이 너무 길어 보였다.
“괜찮아요. 저희는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액셀을 밟았다.
차가 튀어나가듯 움직였다.
주차장 턱을 밟고, 핸들을 꺾고, 큰길로 나왔다.
백미러를 봤다.
아이 둘은 그대로 서 있었다.
뛰지도 않았다.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그냥 내 차가 멀어지는 걸 보고 있었다.
그런데 몇 초 뒤, 조수석 쪽 창문에서 다시 톡 소리가 났다.
톡.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옆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차는 이미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수석 창문 바깥쪽에는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작은 손자국 두 개.
주차장에서 붙었던 손자국이 아니었다.
방금 누가 달리는 차 옆에서 창문을 두드린 것처럼, 유리 한가운데 새로 찍혀 있었다.
그날 집에 도착해서도 문을 바로 열지 못했다.
차 안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차고 불을 켜고, 집 현관등을 켜고, 휴대폰으로 집 안에 전화까지 걸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근데 새벽 3시쯤 초인종이 울렸다.
한 번.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후 현관문 밖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나는 숨도 못 쉬었다.
“이제는 집에 들여보내 주세요.”
다음 날 아침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현관문 손잡이 아래에 작은 손자국이 두 개 있었다.
검은 먼지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지워도 잘 안 지워졌다.
검은 눈의 아이들 괴담은 미국 현대 도시괴담으로, 텍사스 기자 브라이언 베델이 1996년 애빌린에서 겪었다고 주장한 이야기에서 유명해졌다. 핵심은 창문이나 문 앞에 나타난 아이들이 차나 집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가까이 보면 눈 전체가 검다는 것이다. 이후 비슷한 목격담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