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원룸 초인종 옆에 적혀 있던 기호
2000년대 후반쯤이었다.
그때 나는 서울 관악구 쪽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골목마다 CCTV가 달려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원룸촌 분위기도 지금이랑은 조금 달랐다.
밤 되면 골목이 금방 조용해졌고, 오래된 건물 복도는 늘 어두웠다.
내가 살던 건물도 비슷했다.
복도 센서등은 반응이 느렸고, 초인종 옆 벽에는 전단지 뜯어낸 자국이나 검은 얼룩 같은 게 늘 남아 있었다.
처음 그걸 본 건 퇴근하고 돌아온 밤이었다.
현관문 열려고 하는데 초인종 옆에 검은 펜 같은 걸로 뭔가 적혀 있었다.
X
처음엔 별생각 없었다.
누가 장난쳤나 싶어서 손으로 문질러봤는데 잘 안 지워졌다.
그냥 찝찝한 정도였다.
근데 다음날 밤, 퇴근하고 다시 올라왔을 때 기호가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X β
그때부터 조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누가 일부러 다시 와서 적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옆집 사람한테 물어봤다.
“혹시 문 앞에 이상한 거 적혀 있던 적 있어요?”
그 사람은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자기 초인종 옆도 보여줬다.
거기에도 비슷한 표시가 있었다.
동그라미였는지 세모였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 안 난다.
그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이런 얘기 좀 있대요.”
그 무렵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원룸 현관이나 초인종 옆에 이상한 표시가 생긴다는 글이었다.
당시엔 네이트판이나 디시 같은 데서 이런 글이 꽤 자주 올라왔는데, 댓글마다 다들 의미를 추측하고 있었다.
α = 남자 혼자 사는 집
β = 여자 사는 집
○ = 문 잘 안 잠그는 집
△ = CCTV 없는 곳
그런 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부분 루머였을 수도 있다.
나중엔 전단지 업자 표시라는 얘기도 있었고, 실제 범죄와 관계없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근데 그때는 원룸 사는 사람들 사이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다들 장난이라고 하면서도 밤에 들어갈 때 한 번씩 초인종 옆부터 확인하게 됐다.
나도 그랬다.
며칠 동안은 별일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야근하고 거의 막차 시간에 들어왔는데 복도 센서등이 안 켜져 있었다.
휴대폰 불빛 켜고 문 쪽으로 가는데 초인종 옆에 선 같은 게 하나 더 그어져 있었다.
X β ─
화살표 같기도 했고, 그냥 급하게 긋다 만 선 같기도 했다.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누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계속 누군가 문 앞까지 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싫었다.
그날은 괜히 잠이 안 왔다.
원룸은 방음도 잘 안 돼서 복도 지나가는 발소리가 다 들렸는데, 새벽 두 시쯤이었나.
문 밖에서 사람 목소리 같은 게 잠깐 들렸다.
누가 통화하는 줄 알았다.
근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긴가.”
정확한 건 아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술 취한 사람 소리였을 수도 있다.
근데 그 직후에 문고리가 아주 약하게 움직였다.
철컥.
정말 한 번만.
나는 불도 못 켠 채 그대로 숨죽이고 있었다.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면서 확인했는데, 초인종 옆 기호는 전부 사라져 있었다.
분명 펜 자국이 있었는데 흔적이 거의 안 남아 있었다.
몇 년 뒤 뉴스에서 비슷한 얘기를 다시 본 적이 있다.
다른 지역 원룸촌에서도 초인종 옆에 이상한 표시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에서는 대부분 별일 아닌 경우가 많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이상하게 나는 아직도 그 일을 그냥 장난이었다고 생각이 안 든다.
지금도 가끔 늦게 귀가해서 복도 센서등이 늦게 켜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문 열기 전에 초인종 옆부터 한 번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