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우산의 여자 – 깊은 새벽, 나를 따라오던 것
비 오는 깊은 새벽, 친구 집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라면 집 앞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을 뿌리치고 혼자 돌아오던 길,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만화 잡지가 생각나서 집에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렀다. 매장 안엔 나 혼자였고, 빗소리만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첫 번째 잡지를 집어 들어 읽다가 문득 얼굴을 들었을 때, 편의점 유리 너머 도로 위로 흰 우산을 쓴 사람 하나가 지나갔다. 멀어서 얼굴은 안 보였고, 형체만 어둠 속에 떠 있었다.
“이 시간에 누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 의미 없이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번째 잡지를 다 읽고 또 고개를 들었을 때, 그 흰 우산이 다시 지나갔다. 걸음걸이도, 체형도, 우산의 각도까지 똑같았다.
“같은 사람이 또 한 바퀴 도는 건가?”
이상하단 생각은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새로 깔린 잡지를 골라 보기만 했다.
몇 권을 더 훑어보고, 계산대로 가서 점원이랑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도시락까지 사서 편의점 문을 나섰을 땐 비가 조금 잦아들어 있었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횡단보도로 나가는 순간, 앞쪽 20미터쯤에 흰 우산이 떠 있었다.
도시 외곽이라 가로등이 듬성듬성한 골목길,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시간. 흰 우산은 그 희미한 불빛만 받아서 더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걸음을 아주 천천히, 일부러 늦게 옮겼는데도 거리 차이가 점점 좁혀졌다. 내가 조금만 속도를 올리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괜히 신경 쓰지 말자.”
머릿속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집으로 가려면 중간에 작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야 했다. 문제는, 그 골목도 그 흰 우산이 가고 있는 방향이라는 거였다.
“여기서 그쪽으로 먼저 들어가면, 바로 뒤에서 마주친다.”
그 상상을 한 순간, 등골이 얼었다. 그래서 일부러 발걸음을 더 늦추고,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이 먼저 골목으로 꺾어 들면 나도 그다음 골목으로 돌아서 갈까…’
딱 그때, 흰 우산이 내가 가려고 머릿속으로 그려두던 그 골목으로 미끄러지듯 꺾어 들어갔다.
안도감과 동시에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나 스스로 아무 짓도 당하지 않았으면서 상대를 ‘피해야 할 무언가’로 취급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멀어지는 흰 우산 등 뒤로 무심코 고개를 숙여 작게 인사를 했다.
그 순간, 바람도 없는데 빗방울 소리 사이로 아주 작게, 무언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말인지, 숨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건 분명 내 쪽을 향해